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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남양리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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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흥 남양리 산성은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 일대에 있는 해발 162m 산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산성이다. 백제 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동서 양쪽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성 안에서는 토기류, 자기류, 기와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총 둘레 534m, 너비 4m 내외의 석성으로, 전남 동부 지역 백제 산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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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남양리 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고흥 남양리 산성
로마자 표기Goheung Namyangri Sanseong
고흥 남양리 산성 그림
고흥 남양리 산성
국가대한민국
위치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 남양리 산75-1번지
유형기념물
지정 번호207
지정일2002년 11월 27일
시대백제
면적29,564m2
문화재청 ID23,02070000,36

2. 위치 및 지형

고흥군 남양면 남양리와 중산리 일대, 해발 162m의 산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산성으로 동서 양쪽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이다. 이 지역 일대는 백제 시대에 조조례현(助助禮縣)이 있었던 곳으로, 통일신라 경덕왕 때 충렬현(忠烈縣)이 되었다가 고려 시대에 남양현(南陽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3. 역사

이 지역 일대는 백제 시대에 조조례현(助助禮縣중국어)이 있었던 곳이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충렬현(忠烈縣중국어)으로, 고려 시대에 남양현(南陽縣중국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3. 1. 축성 시기 및 사용 시기

고흥 남양리 산성은 백제 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에서 출토된 토기, 자기, 기와, 방추차, 숫돌, 석환(石丸) 등의 유물로 볼 때, 조선 시대까지 계속해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4. 구조

고흥 남양리 산성은 돌을 쌓아 만든 산성으로, 둘레는 534m, 너비는 4m 내외이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부정형으로 남북이 동서보다 길며, 성벽은 동벽과 북벽 일부가 잘 남아있다.

4. 1. 시설물

성 안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는 지형으로, 성 안에 있는 평탄지는 12곳이 확인된다. 평탄지는 계단식 형태를 띠고 있으며, 대부분 예전에 논밭으로 경작했던 곳으로 현재는 폐경지이다. 성 중앙부에는 돌로 쌓은 원형 우물 2곳이 나란히 있는데, 지금은 폐쇄되어 물이 나지 않는다. 문터는 현재 출입로로 이용되는 성의 남동쪽 회절부(回折部)에서 서쪽으로 40m 정도에 있다. 현재 흙과 모래에 밀려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동쪽의 외측 모서리부분이 높이 90cm가량 남아 있다.

5. 출토 유물

성 안에서 토기류, 자기류, 기와류, 방추차, 숫돌, 석환(石丸)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로 추정된다.

6. 의의와 가치

남양리 산성은 성이 자리 잡은 위치 및 쌓은 방법,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백제 시대에 처음으로 쌓았던 산성이며, 전라남도 동부지역의 백제 산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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